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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후지와라 다카오 (경북대학교) 박규태 (한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19집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397 - 43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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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침공해 온 일본군 중에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正]군에서 조선군에 투항한 왜장 사야카[沙也可]는 전공에 의해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이름과 ‘정헌대부’라는 고위 직계를 하사 받았다. 사야카는 66세까지 전선에 나섰고, 평시 유학을 수학하여 많은 저술과 시문을 남겼다. 따라서 사야카의 유문 중에는 유학적 용례가 많다. 그 중 『모하당문집慕夏堂文集』의 시문에 5편의 단시와 <술회가述?歌>라는 장편 서사시가 있는데,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사야가의 시문을 통해 그 유학적 사고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나 거기서 유학적 용례가 나타나는 것은 <술회가>뿐이다. 이 <술회가> 시문 232행 중 41행에서 유학적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중 『모하당문 집』의 편집자 김한조金漢祚와 개정자 이가순李家淳에 의해 문식된 흔적이 짙은 14행을 제외한다면, 사야카의 독자적 사고를 보여주는 ‘의義’ 관련 용례는 ‘춘추대의春秋大義’·‘진력우왕민盡力于王民’·‘의백충혼義魄忠魂’ 등에서 나타나며, 투항 직후의 시점에 있어 신하의 충의를 나타내는 ‘의’로부터 후 년에는 점차 국가·사회·민民에게 몸을 바치는 광의의 ‘의’라는 사고방식으로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요약문
1. 서론
2.『모하당문집』에 나타난 사야카의 시가에 관하여
3. 사야카 시가에 있어 편집자의 유학용례
4. 사야카의 시가에 나타난 유학사상
5.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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