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1921년부터 1940년까지의 『동아일보』, 1923년부터 1940년까지의 『조선일보』, 1922년부터 1944년까지의 『매일신보』의 조선미술전람회관련기사를 분석해서, 조선미술전람회가 일본의 식민정책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그리고, 조선이 조선미전의 개최를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저항했는지, 조선미전를 둘러싼 이중구조를 명확히 밝히고자 했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식민통치권력의 정당화와 일본에의 동화를 위한 문화ㆍ예술영역의 통제 및 관리를 강화하는 목적에서 설립되었지만, 민족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일본의 목적을 인식하면서도 조선민중들이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고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조선과 일본의 인식차가 현저하게 나타난 것은 ?여류작가의 활약?과 ?향토색논쟁?이었다. 『매일신보』는 여류작가의 비전문성을 강조하고 향토색표현에 있어서도 일본의 일개지방으로서의 조선색을 강조했다. 반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여류작가의 활약이 근대화의 전조임을 강조하고, 향토색표현이 일본에의 동화를 거부하는 독자성과 주체성의 상징임을 인식하고 장려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