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의환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4권 제1호
발행연도
2011.5
수록면
115 - 149 (35page)
DOI
10.17068/lhc.2011.05.14.1.11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단양군선생안』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단양군수의 성관과 거주지 및 입사로는 물론 이들의 재임 기간과 교체 사유 및 부임 후 활동을 검토한 것이다. 전형적 산촌 군현인 단양과 다른 지역수령의 이력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조선시대 수령의 재임 실태를 살펴보려고 하였다.
단양군수 205명 가운데 성관이 밝혀진 187명은 모두 85개의 성관에서 배출되었다. 전주이씨가 15명(8.0%)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안동권씨와 안동김씨가 각각 9명(4.8%)이었으며, 대구서씨는 8명, 광산김씨와 동래정씨가 각각 6명 등이었다. 이들의 거주지는 157명 가운데 서울 출신이 106명(51.7%)으로 가장 많았다.
단양군수는 원래 음관이 부임하는 곳이었으나, 실제 음관 출신은 144명(70.2%)이었고, 문과도 59명(28.8%)이 임명되었다. 이들의 법정 재임 기간은 60개월이었는데, 3년 이상 재임한 사람은 40명(26.0%)으로 다른 지역보다 많았다. 평균 재임 기간은 23개월로 다른 지역의 15~17개월보다 훨씬 길어, 단양군수의 향촌 지배력은 다른 지역보다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단양군수의 교체 사유는 다른 지역의 경우 파직이 가장 많았으나, 이곳에서는 159명 가운데 56명(35.2%)이 이임으로 교체되었다. 파직은 50명(31.4%)이었는데, 다른 지역이 28.4%~60.9%인 점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었다.
단양군수는 부임하여 향교와 관아의 건립에 적극적이었다. 태종 15년 이작이 단양향교를 창건한 후 많은 군수가 향교와 관아를 중수하였고, 영조 6년 서명빈은 양사청을 창건하였다. 이들은 부임 후 흉년과 기근 및 부세 문제를 잘 해결하여 후에 선정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조선후기에 유향소(향소)는 수령권에 예속되었는데, 단양군수는 首幕?佐幕?右幕으로 불린 향임을 직접 임명하였고, 황은은 구향과 신향이 혼재된 향안을 개정하여 향전을 조정하는 등 단양군수의 수령권은 다른 지역보다 안정적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단양군수의 前歷
3. 단양군수의 재임 실태와 활동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3)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900-000524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