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문화사’와 ‘지성사’의 호흡을 통해 퇴계사상의 숨은 일면을 발굴해 내는데 초점을 둔 ‘또 다른 형식의 퇴계 사상’으로서 하나의 시론적(試論的)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이 논문은 ‘학설’ ‘교리’를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종래의 퇴계연구와 달리 생활사, 문화사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불교를 제외한 동아시아 유학사상사에서 ‘거울’을 은유로, 부분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상을 구축하고 있는 경우는 퇴계가 단연 돋보인다. 예컨대 중국사상사에서 양명학에서는 ‘정금(精金)의 비유’가 등장하긴 하지만 거울의 비유는 보이지 않는다. 주자학에서도 거울의 비유가 보이긴 하지만 그 예들이 체계화된 형태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다. 일본사상사에서도 양명학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나카에 토쥬(中江藤樹)의 경우 『감초(鑑草)』같은 저작이 있긴 하나 퇴계의 경우처럼 ‘남성-주체’ 일반의 덕성함양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 ‘부녀자의 교훈서’라는데 특징이 있다. 한마디로 퇴계 사상은 ‘거울(鏡)’의 은유로 구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정점에 놓여 있는 것이 퇴계 59세(1559년)에 편집한 『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이라 생각된다. 사실 퇴계사상에서 거울의 은유는 단지 『고경중마방』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자연 속에서 자신을 성찰한 시집 『퇴계잡영(退溪雜詠』ㆍ『도산잡영(陶山雜詠)』ㆍ『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등의 시, 총 22편의 편지를 편집한 『자성록(自省錄)』, 17세의 소년왕 선조가 자신을 성찰ㆍ연마하여 국정에 온전히 힘쓰도록 하기 위해 신유학의 도설, 이론을 모아 열 폭의 그림으로 편집한 『성학십도(聖學十圖)』는 모두 거울의 은유로 짜여 있다. 이들 주요 저작의 근저에는 퇴계 학문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경(敬)’의 심학적 수양 방법론이 놓여있다. 그래서 퇴계의 이러한 심학적 수양 방법론을, ‘경서(經書)ㆍ성현(聖賢)ㆍ리(理)’를 강조하고, 『리(理)와 하나 되는 ‘거울을 단 고요한 마음’의 지향』이라 표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퇴계잡영』과 『도산십이곡』은 ‘고인의 예던 길’?‘성현의 말씀’, 그리고 천지자연의 변화의 이치를 담은 성실한 ‘자연’을 자신의 거울로 삼아서 노래한 것이었고, 『자성록』은 ‘스스로를 돌이켜보기 위한 것’이고, 『고경중마방』은 ‘성현이 남긴 잠언(箴言), 경계의 말씀(警句)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반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도산잡영』은 퇴계마을에서 자신을 자연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보고 그 느낌을 읊은 것이었으며, 그의 만년의 사상을 함축한 편저 『성학십도』는 그것을 올리는 글(『진성학십도차(進聖學十圖箚)』) 속에서 밝히듯이 17세의 소년왕 선조가 ‘깊게 생각하고 익히며(思之習之), 참되게 실천하며(眞踐履之), 반성을 정밀하게 하며(省察者愈精愈密), 끊임없이 실천하는(反復終始)’자료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거울, mirror, 鏡, 監ㆍ鑑의 의미』를, 이어서 『동양사상과 ‘인간의 마음에 대한 탐구’로서 거울의 은유』를, 마지막으로『퇴계사상과 ‘거울’의 은유』를 『퇴계잡영』, 『도산십이곡』, 『자성록』, 『고경중마방』, 『성학십도』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결론적으로 퇴계가 거울로 삼은 것은 첫째, 둘째, ‘자연’이고, 둘째, ‘성현의 말씀’과 ‘고인의 예던 길’이었다. 이 두 가지는 퇴계에 있어 인간 자신을 비추어 보며 그 잘못을 바로잡아 옳은 길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거울’이었다. 인간은 늘 그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있어야할 모습, 즉 이상상(理想像)을 창출해 가야하는 것이었다. 퇴계의 거울의 은유는, 신유가들이 그랬듯이, 도가나 불가(특히 禪家)의 영향을 받은 점이 인정되지만, 퇴계가 표현하고자 하는 ‘명경지수’의 논의는 ‘선공(禪空)’이나 ‘도명(道冥)’이 아닌 ‘인륜일상(人倫日常)’의 맥락 내에서 행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