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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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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2집
발행연도
2009.10
수록면
219 - 24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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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沈衡鎭이 저술한 『朝鮮歷史千字文』을 분석한 논문이다. 심형진은 한학과 일본어에 능숙하며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자발적으로 협력을 했던 일제협력유림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대한제국기에 탁지부 견습생으로 선발되었다가 탁지부 주사로 서임되어 관료생활을 하였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한 후, 심형진은 일제 치하에서 충실하게 관료 생활을 하였다.
심형진은 1921년에 ‘내선융화’를 주장하는 글을 『朝鮮』에 기고하였고, 이후 일본의 침략전쟁과 고위관료를 찬양하는 한시 등을 꾸준히 작성하는 등 일제강점기동안 일제에 영합하는 문필 활동을 하였다. 그는 1928년 『조선역사천자문』을 광주(光州)에서 간행하였다. 『조선역사천자문』의 본문은 단군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 있었던 각종 역사적 사실들을 중복되지 않는 1,000자 한자로 표현하였다. 글자만 보고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은 주해란을 두어 역사적 배경, 상황 등을 설명하였다. 『조선역사천자문』은 심형진이 당시 간행되었던 『東史年表』, 『三國史記』, 『三國遺事』, 『高麗史』 등 각종 역사서들을 참고하여 기록하였다. 그래서 내용이 비교적 다양하고 포괄적이었으나, 필자의 주관적인 해석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역사천자문』을 통해서 나타난 심형진의 역사인식은 우선 단군과 고조선을 인정하였다. 또한 기자조선도 실제 있었던 역사로 생각하였는데 이는 조선시대 유림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불교 숭상에 따른 폐해와 고려 왕실의 윤리에 맞지 않는 결혼, 조선시대의 당쟁 등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조선역사천자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마지막 부분으로 조선 민족이 일본의 보호 아래에 번성하기를 바라는 구절이었다. 이는 심형진이 주장했던 내선융화의 다른 표현이었다. 사실 마지막 부분은 심형진의 친일 행적이 알려진 것과 동시에 엄수동의 예리한 안목이 더해지지 않았다면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沈衡鎭의 행적
Ⅲ. 『朝鮮歷史千字文』의 체재와 내용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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