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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카프카학회 카프카연구 카프카연구 제8집
발행연도
2000.12
수록면
335 - 35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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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논제는 나치 선전영화에 나타난 적의 모습의 담론 속에서 나치의 자화상과 그들의 억압된 욕망이 발견된다는 주장이다. 그 기획, 제작 및 배급의 전 과정을 통해 역사상 유해 없이 조직화, 계획화된 반 유대교 중론을 형성하고 심화시키는 목적을 가진 나치의 영화체제는 근본적으로 나치의 이상적 인간상을 정립함을 목표로 삼았으나 곧 그 효과의 한계에 다다르게 되고 다음 단계로서 동일자의 부정으로서 동일자의 속성과 배치되는 속성으로 구성된 실체로서의 타자상을 정립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동일자 das Eigene와 타자 das Andere 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욕망 Begierde”으로 설명한 프로이트와 라깡의 상론에 따라 정체성의 정립과정에서 타자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타자는 이때 동일자의 정체성 정립의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타자성 Alteritat이란 다름 아닌 동일자의 정체성 Identitat 정립에 있어 갖는 기능성을 일컫는다. 이 점에서 볼 때 동일자와 타자의 관계는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와 비교될 수 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das Unheimliche”와 “das Heimliche” 간의 관계 역시 친근함에 내재한 이질성, 곧 동일자 속에 내재한 타자성의 또 다른 일례이다. 호르크하아머와 아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상론하고 있는 반유태주의는 또 다른 예이다. 유대인은 문명화된 인간이 자신은 이미 극복한 것으로 간주하는, 문명에 의해 억압된 “직접성 Unmittelbarkeit”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그 결과 문명화된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대인을 파괴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동일자와 타자간의 변증법을 우선 두 편의 대표적인 나치 선전영화, 『영원한 유대인 Der ewige Jude』과 『유대인 쥐스 Jud Suß』를 통해 살펴본다. 두 영화는 각기 기록영화, 역사물이라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억압된 미메시스적 특징의 소유자로서의 유대인상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데 일치한다. 『영원한 유대인 Der ewige Jude』은 유대인의 주변 사회에 동화하려는 노력을 위장행위로 노정시키며, 또 유대인의 종교의식을 반분명적 금지를 위반하는 마법의 행위로 이해한다. 이에 유대교의 가축 도살장면 삽입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충격효과를 체험케 함으로써 극복되어지지 못한 인류의 야만성을 노출시킨다.
반 유대인적 선전영화 기법 중 가장 큰 효과를 노린 것이 바로 ‘쥐 은유 Ratten-Matapher’이다. 절대적 타자성의 상징으로서의 쥐 은유는 그 효과상 예술을 수단으로 성취할 수 있는 증오와 혐오 표현의 극단적인 예이다.
동일자가 외양상 이미 극복한, 하지만 그 재현을 두려워해 억압하게 되는 원시자연의 상태를 보존하는 대상으로서의 타자가 지금까지 논의되었다. 이번에는 동일자의 무의식적 동경의 투영으로서의 타자가 두 영화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살펴본다. 『유대인 쥐스 Jud Suß』의 주인공 쥐스의 우월한 시야로 나타나는 도전적인 성적 갈망은 다름 아닌 관객이 남성 주인공과 자신을 일치시켜 얻게 되는 “시각적 도락 Skopophilia”이다. 다시 말해 관객은 전지적 시야의 소유자인 주인공을 이상적 자아로서 자신과 일치시키고 그 주인공의 시야를 내면화한다. 나치시대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유대인에게 탁월한 감각적 권능이나 비상한 유혹술을 전가하는 행위는 실은 자아의 무기력의 표현이자 억압된 욕구에서 도출되는 타자에게로 자신의 동경을 투영하는 행위인 것이다.
주인공 쥐스는 권력과 돈에 대한 욕구에 있어서 특유의 유대인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의 재력을 기반으로 긍정에 진입, 공작의 신임을 얻은 후 간계와 권력의 남용을 통해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은 획일화 Gleichschaltung와 수권법 Ermachtigungsgesetz을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쟁취한 히틀러의 정치 수법과 동일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유대인 쥐스의 종말과 그의 궁극적 멸망은 동시에 히틀러의 패망과 유사함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여기에 타자의 비방과 전멸, 말소를 목표로 제작된 나치 영화의 자기 지양적 메커니즘이 확연히 드러난다. 나치 영화에서 타자의 부정적 묘사의 궁극적 의도는 자국민의 전면적인 정신적 획일화였다. 유대인이 타자로 묘사되기 때문에 관객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영국 제국주의를 비판의 대상으로 하는 또 다른 선전영화 『크뤼거 아저씨 Ohm Kruger』에서와 같이 남아프리카의 부어족을 섬멸하는 영국군의 집단수용소에서의 집단 살육장면이 묘사될 때, 적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선전 영화의 소기의 목적은 역설적으로 지양, 소멸되고 오히려 나치 자신의 자기노출의 상황이 발생한다. 자아와 타자간의 경계는 이로써 모호해진다.
이것이 다름 아닌 자아와 타자의 변종법이다. 동일자의 정체성 정립이 타자의 비방을 그 수단으로 하면 할수록 그러한 의도의 곤궁성과 병적 포박행위는 더욱더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나치 선전 영화는 더 이상 단순한 파시소트의 대(對)유대인 정책의 수단만이 아니다. 이 영화 속에 나타나는 나치의 자기 소원(疎遠) 현상의 정도는,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의 말대로, 나치 스스로의 파멸을 일류급의 “미적 환락화”시키고 있다. 나치 영화의 핵심은 다름 아닌 벤야민의 정의한 “정치의 심미화 Asthetisierung der Politik”인 것이다.

목차

Ⅰ. Einfuhrung
Ⅱ. Die Dialektik des Eigenen und des Anderen
Ⅲ. Das Andere als Unfaßbare, das Unheimliche
Ⅳ. Das Andere ist das Unbewußte des Eigenen als Wunschprojektion
Ⅴ. (Identitats)Verlust des Eigenen
Bibliographie
〈국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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