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표영관 (강릉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2輯
발행연도
2008.11
수록면
39 - 62 (2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고구려불교의 전래시점과 전래 방법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기왕의 연구에서는 공식기록인『三國史記』372년 전래 의견과, 『梁高僧傳』에“高句麗聞道之始”로 기록되어 있는 曇始의 390년 경 전래 의견, 『梁高僧傳』에 등장하는“高麗道人”의 366년 이전 활동 의견 등이 있었다. 각각의 기록은 시기와 전법자를 달리하면서도 고구려에 처음 불교를 전했다는 공통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록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상인 불교가 유통되는 과정에서의 개별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372년을 공식적인 불교의 전래인 公傳으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담시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사상은 공전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372년 이후에도 수차례의 새로운 전래를 통하여 보완되어 완성되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고구려인들이 불교사상을 처음 접한 것은 언제일까?
공전과는 다르게 初傳은 명확한 시점을 찾기 힘들다. 전래의 경로 역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양고승전』에 등장하는 고려도인의 존재이다. 고려도인의 존재는, 적어도 366년 이전에 이미 고구려에 명망 높은 高僧이 존재했다는 근거로서 이용되어왔다. 그러나 초기 고구려 불교는 담시가 입국하기 이전까지 매우 영세함과 곤란을 면치 못했음을 담시의 입국과정에서 짐작할 수 있는데, 이보다도 50년가량이나 앞선 시점에 고승이 출현했다거나, 고구려에 불교가 널리 일반화되어 있다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또『양고승전』에 등장하는 道人의 용례를 분석해 볼 때‘고려도인’이 고구려 고승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고려도인이라는 표현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본고에서는 새롭게『양고승전』에 등장하는 佛圖澄의 戎貊敎化기사에 주목해 보았다. 중국 측 사서에서 고구려를 貊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반사이지만, 연칭으로 사용된 융맥이라는 표현에서는 누구를 지칭하는지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다만 융맥은 북방이민족의 범칭으로 사용되거나 遼東의 居住民을 지칭하는 것 등으로 확인되는데, 고구려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또 불도징이 활약한 後趙와 당시 고구려가 매우 밀접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불도징이 교화했다는 융맥의 무리에 고구려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해보았다.
본 논문이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사상의 유입과 관련하여 향후, 보다 심층적인 연구주제가 될 만한 항목이라 전망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曇始’와 ‘高麗道人’ 기사의 재검토
3. 佛圖澄의 戎貊敎化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