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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48
발행연도
2007.12
수록면
335 - 36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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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경의 섬이기도 한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대한해협에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고대로부터 대륙과 한반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특히, 전근대 시대에 있어서의 대마도는 해상 교통로상의 중요한 기항지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 교류의 중계지로서 존재하였다. 그런데 대마도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대마도가 가지고 있는 문화교류사적인 측면과 정치·외교사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고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교류에 있어서 대마도가 어떤 역할을 하였던가, 그리고 고대 한·일 양국의 지배층은 대마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대마도는 지정학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 위치한 관계로 선사시대 이래 양국 문물 교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도작문화와 철기문화 등 고대국가 형성에 필요한 선진 문물이 일본열도로 전파되어 갔다.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삼한과 삼국의 정치세력뿐만이 아니라 중국대륙의 정치세력들과의 정치, 문화의 교류에 있어서도 대마도가 해상 항로의 주요 기항지로 이용되었다.
한편, 대마도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인식은 시기와 당시 정세에 따라 변화되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한반도 남부에 가야가 성립하고 난 이후부터 대마도는 가야 및 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역사를 영위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7세기 중반의 백강전투 이전의 단계에서는 왜국의 정치, 문화 교류의 중계 역할을 담당하던 섬에서, 백강 전투 이후의 동아시아적 위기 정세를 계기로 하여 점차 大和정권의 국경의 섬으로 정착되어 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마도는 문화교류사적 측면에서 볼 때 고대 한국과 대륙 문화의 기항지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의 수용지임과 동시에 발신지의 역할을 하였다고 보아진다. 또한 정치교류사적 측면에서 볼 때 대마도는 고대 한국과 일본의 국경의 섬이었으며, 한반도 지역을 둘러싼 동아시아적 군사 긴장내지 전쟁에의 개입이나 침략의 시기에 있어서는 그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대마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근세와 근대기에 있어서도 한·일 양국의 선린우호를 매개하기도 하고 일본열도 정치세력의 대륙 진출의 출선기관지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결국, 대마도는 한국 측에서 본다면 문화를 전달하는 출구였지만, 일본 측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화를 받아들이는 입구임과 동시에 한반도와 대륙 진출의 창구였던 것이다. 이러한 양국의 문화적, 정치적 필요성의 인식의 차이가 대마도의 귀속 욕구의 차이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대 한?일 해상로와 대마도
Ⅲ. 고대 문화의 전파와 대마도
Ⅳ. 한?일고대국가의 영역 인식과 대마도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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