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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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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27號
발행연도
2007.6
수록면
447 - 465 (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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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인도에서의 불탑은 불타의 업적을 기리고 칭송하는 대상체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아소카왕의 팔만사천탑과 중국의 인수사리탑으로 대표되는 탑들은 통일 후 불력으로서 국가를 통합하는 구심체적 역할로 건립되었다. 그런데 신라의 탑은 초기부터 열반의 결과인 불사리를 모시는 공간일 뿐 아니라 영원불변을 기초하는 超歷史的, 出世間的 불탑관을 표방하였다. 신라사회에 이 같은 불탑관을 형성하게 된 계기는 황룡사 구층탑의 건립이다. 황룡사 구층탑에 반영된 불탑관은 탑(사리)이 주변국가를 조복시켜 재앙을 소멸할 수 있다는 사상이다. 이 같은 불탑관은 安弘에게서 비롯되었다. 안홍은 601년부터 605년까지 隨나라의 수도 大興 大興善寺에 머무르면서 仁壽舍利塔의 건립과 영험을 목격하였고 또 많은 밀교관련 경전들을 국내로 소개했던 인물이다. 그의 불탑관은 호국적 성격과 신라불국토설에 근거하고 있다.
이 같은 불탑관은 통일초기 神印的 밀교사상을 기반으로 한 明朗에 의해 구체적으로 계승되어 사천왕사 건립에 투영되었다. 狼山은 신라인들이 생각했던 須彌山이므로 사천왕사에 건립된 불탑은 수미 산형을 표출한다는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사천왕사에 나타난 초기 쌍탑 가람의 형태는 신라불국토의 완성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고, 곧 불탑=호국이라는 신라불탑관 성립의 완성으로 이어졌다. 이는 통일신라 후기 대표적 조탑경인 『무구정경』에서 개인의 복덕을 기원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국가와 백성의 평안을 중시하는 불탑관으로 확대되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皇龍寺九層塔의 建立과 新羅佛塔觀의 成立
Ⅲ. 統一新羅 初期 佛塔觀의 展開
Ⅳ. 『金光明經』의 體制와 佛塔觀의 變化
Ⅴ.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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