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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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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46
발행연도
2007.6
수록면
195 - 240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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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鴻?井石刻’에 새겨진 ‘宣勞靺?使’의 말갈에 대해 기존에는 발해와 동일시함으로서, 비칭설 또는 국명설의 중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여기서의 말갈은 발해 이외에 말갈 제세력을 포괄하는 범칭이다. 당은 대조영의 책봉 외에 말갈 제세력의 군사적 원조를 위해 崔?을 ‘宣勞使’로 파견한 것이다.
발해초기 일부 말갈세력은 진국 중심의 연합체를 형성했는데, 그 원인은 첫째, 李盡忠 난과 요동지역의 반당전쟁의 장기화 및 돌궐세력의 확장에 따른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과 둘째, 말갈제부의 대외교역의 필요성 때문이다. 그리고 고구려 당시의 정치적 경험과 고구려 멸망 후의 반당투쟁 등 공통된 역사경험은 이들이 연합하는 데 심리적 작용을 한다.
이러한 발해ㆍ말갈세력 간의 연합과 세력재편을 감지한 당이 북방의 돌궐ㆍ해ㆍ거란을 견제할 세력으로 이들을 선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720년 9월 발해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요청이 거부당하면서 당의 선로는 실패로 돌아간다. 반면 발해는 이후 연합내의 관계를 종속관계로 변화시키면서 말갈제부의 대외활동을 통제하고 8세기 중엽에는 발해국가체제 내에 복속시키며 급성장한다.
‘鴻?井石刻’은 이러한 발해초기의 연합형성과 해체 및 복속 등 국가성장의 중요한 증거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鴻?井石刻의 연구현황
Ⅲ. 崔?의 職名과 그 의미
Ⅳ. 713년 전후 渤海의 성장과 唐의 ‘宣勞靺?使’ 파견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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