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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동아인문학 제5집
발행연도
2004.6
수록면
235 - 252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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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주류사회는 유학사상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五四運動 시기의 사상계는 이른 바 孔子打倒를 부르짖음으로써 철저하게 유학사사상을 부정했으며 심지어는 유학사상을 중국사회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서방열강들에게 모욕을 당하게 된 근본원인으로 간주하기까지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방사회의 “민주”, “자유”, “개성해방” 등을 고취하여 유학사상을 대체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중국의 지식인과 관원들이 지탱해온 전통적인 인생관과 가치관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관과 윤리도덕의 표준이 때에 맞추어 세워지지 못함으로 인해 통치자들은 더욱 부패하고 사회제도는 불합리해짐에 인민들은 혁명이란 수단을 이용하여 낡은 정권을 무너뜨렸다. 1949년 중국정권이 수립된 이후에도 유학사상은 여전히 비판의 대상이 되어 “문화대혁명”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었지만 인민들의 가치관과 도덕관은 변함이 없었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각종 사회악의 근본 원인이 법률의 미비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정부와 법률가들은 무수한 법률조문을 제정했다. 하지만 법조문이 많아지면 질수록 사회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여기서 법률조문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인민들의 가치관과 윤리도덕 정신을 재건함이 중요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유학사상”의 재건이었다. 2001년 중국정부가 학생들에게 “공자와 유가사상”을 학습하도록 함은 그 대표적인 예였다.
이 유학사상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의 통치이념으로 군림해왔으며 통치자들 또한 유학사상의 효용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유학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데 있는 것이다. 입으로 誦經을 할 줄 아는 貪官汚吏가 많음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와 미래의 중국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유학의 仁義思想을 교육시킴과 동시에 실천을 장려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淸代 말기의 대학자요 관원이었던 阮元은 유학사상의 실천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완원은 그의 문제 《?經室集》序에서 “書室名을 ?經이라 한 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학문을 함에 經典을 가까이 했기 때문이다. 내가 경전을 해설하는 것은 옛 뜻을 밝혀 實事求是하는데 있을 뿐 특별한 말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유학에서 一貫된 聞達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朱一新、 張太炎、 胡適、 侯外廬 등은 모두 완원이 실천관에 대해 깊은 이해와 관심을 기울인 바가 있었다.

목차

Ⅰ. 引言
Ⅱ. 阮元實踐觀産生的背景
Ⅲ. 阮元實踐觀的理論
Ⅳ. 學術史上對阮元實踐觀的評論
【參考文獻】
〈국문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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